‘나의 해방일지’, 발에 채는 죽음, 지겨움 그래도 살게 되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엎어놔 주지. 왜 동물들은 다 죽으면 배를 보이고 누울까? 꼭 사람처럼. 이런 동네에선 아침마다 하나씩 시체를 마주해요. 족제비가 먹다가 만 쥐 대가리, 물통에 빠져죽은 다람쥐, 옛날에는 제일 많이 보던 게 개구리 시체였는데 지금은 논이 없어서. 집 주변으로 다 논이었을 땐 개구리들이 밤이면 길을 건너서 이쪽 논에서 저쪽 논으로 건너가는데, 그 때 차가 지나가면 두두두둑 터지는 소리가 들려요. 조용한 밤에 두두두둑. 아침에 나와서 보면 개구리들이 종잇장처럼 바닥에 여기저기. 근데 왜 밤에 건너나 몰라. 낮에는 발이 뜨거운가?”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미정(김지원)은 밤길을 걸으며 구씨(손석구)에게 생각나는 대로 말을 쏟아낸다. 그 말은 구씨가 죽은 새가 있다며 미정을 피해 걷게 하면서 튀어나온 것들이다. 미정은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대단히 철학적인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얘기’가 그냥 나온단다. 구씨 때문이다. 미정은 그렇게 누가 시키지도 않은 말을 마구 털어놓으면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자신이 사랑스럽다는 감정이 올라온다고 했다.

그런데 미정이 별 생각 없이 꺼내놓은 그 말은 우리네 삶이 마주하고 있는 허망함을 드러낸다. 생명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갑자기 꺼질 수 있다. 개구리들은 길을 건너며 자신들 위로 차가 지나갈지 몰랐을 게다. 그렇게 삶은 순식간에 죽음으로 던져진다. 두두두둑.

하지만 우리는 그런 죽음을 결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없다. 제 아무리 강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간 정체를 알 수 없던 구씨가 가진 비밀은 바로 그 죽음과 관련 있었다. 아마도 조폭이었을 그는 두목의 동생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그 동생은 사는 걸 너무나 괴로워하는 사람이었다. 구씨는 미정에게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들려준다. 왜 이런 곳으로 들어와 하루하루를 술에 의지해 그저 보내고 있는지를.

“옛날에... TV에서 봤는데 미국에 유명한 자살절벽이 있대. 근데 거기서 떨어져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 인터뷰를 했는데 하나 같이 하는 말이 3분의 2지점까지 떨어지면 죽고 싶게 괴로웠던 그 일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느낀대.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죽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발을 뗐는데 몇 초 만에 그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느낀대. 그럴 거 같았어. 그래서 말해줬어. 사는 걸 너무너무 괴로워하는 사람한테 상담은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고 3분의 2지점까지 떨어지는 거라고. 그러니까 상담 받아보라고. 했는데 그냥 떨어져 죽었어.”

삶과 죽음의 경계는 그렇게 짧고 얇다. 3분의 2지점에 도달하는 몇 초 사이에 너무 괴로워 죽고 싶었던 마음이 삶에 대한 욕망으로 채워지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을 살짝 넘으면 삶은 죽음으로 나간다. 무언가 욕망을 갖고 길을 건너던 개구리가 한 순간에 죽음 저편으로 날아가듯. 두두두둑.

우연히 만나게 된 조폭 두목이 “쇼하냐? 망가진 척?”하고 비아냥대자 구씨는 짐짓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가 왜 망가진 척 해야 되는데?”라고 되묻는다. 두목은 자신이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도 서럽게 울던 구씨가 자기랑 살던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눈물도 안 흘렸다며 인간이 어떻게 그러냐고 비난한다. 그러면서 구씨가 한 “3분의 2지점” 운운하는 이야기가 사실은 죽으라고 한 얘기 아니냐고 묻는다. 구씨는 미정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게 맞다고 시인한다. “너무너무 지겨워하는 여자를 보는 게 너무너무 지겨워서” 그렇게 말했다고.

사는 건 때론 죽고 싶을 정도로 지겹다. 그래서 옆자리에 앉은 선배가 너무너무 지겹고 버거운 창희(이민기)처럼 때론 “나한텐 피가 없다. 나는 나무토막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죽음을 상정해야 버텨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죽음은 실제 겪은 이들에게는 태훈(이기우)이 부모를 잃었을 때 느낀 것처럼 양팔 한 짝씩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으로 다가오는 일이다. 구씨는 어떨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장하고 있지만, 이 먼 곳으로 숨어들어와 하루하루를 나무토막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죽음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할 정도로 가까이서 훅 다가오는 것처럼, 삶 또한 예기치 못한 우연들이 엮어져 죽음을 빗겨나게 한다. 그날 전철에서 잠들었던 구씨를 깨워 당미역에서 내리게 한 건 술에 취한 창희를 끌고 내리던 미정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급하게 내리다 핸드폰을 놓고 내렸고 그것 때문에 구씨에게 복수하려 기다리던 조폭들로부터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사는 그 집으로 들어와 미정을 만날 수 있었고 그로부터 “날 추앙해요”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뭐든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건 기이한 거 같애. 그냥 네일일 뿐인데 왜 여자의 시체를 보는 거 같을까?” 회사에서 책상 바닥에 떨어진 네일을 보곤 미정은 옆자리 동료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날의 경험을 퇴근길에 만난 구씨에게도 이어 말한다. “버스 창틀에서도 인조손톱 본 적 있는데 진짜 이상했어. 있어야 할 데 있지 않은 것들은 다 기이해. 땅에 누워 있는 새, 나무에 매달린 사람, 밭에 있는 개도 이상하고.” 별 뜻 없이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쏟아내는 미정의 이 말은 마치 구씨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있어야 할 데 있지 않은 것들...

구씨의 삶은 어딘가 엇나가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고 늘 달리던 궤도 바깥으로 이탈해 있다. 그리고 그곳에 갇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만 시간을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미정이 그 삶 속으로 들어와 조잘조잘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또 뜬금없이 자신을 추앙하라고 요구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마치 이 편에서 저 편으로 간단하게 뛰어넘을 수 있는 어떤 것처럼 허무하고 허망하다 여기는 누군가에게 이런 재잘거림은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마냥 또 하루를 살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을까. 구씨는 과연 이 허무에 갇힌 삶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미정과의 추앙을 통해 그건 가능할까. 이건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던져지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