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부터’, 막장 희화화하는 막장의 향기

[엔터미디어=정덕현] “작가님.. 예리 언니. 요즘은 낙태하는 거 합법이죠? 의료사고로 인공수정 잘못해서 임신하면..” 막장드라마 <욕망의 가면> 보조작가인 오우리(임수향)는 메인 작가 유예리(이도연)에게 자신이 처한 의료사고에 대해 말을 꺼낸다. 산부인과에 진료를 보러 갔다가 정신이 나간 듯한 의사 때문에 다른 사람이 받을 인공수정을 받게 됐고 덜컥 임신하게 된 것.

그런데 오우리의 이 이야기가 유예리는 그가 쓰려는 막장 아이템인 줄 오해한다. “너.. 니가.. 드디어 막장에 눈을 떴구나? 드라마 아이템 좋은데?” 자기 얘기라고는 못하겠는 오우리는 유예리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사고를 수습한다고 낙태해도 죄는 아니지 않냐고 묻는다. 그러자 유예리는 본격적으로 막장 전개를 이야기한다. “낙태.. 아니 그게 아니라 한 20억? 부잣집에서 한 20억 준다고 애 낳아달라고 하면은 막장의 정석으로 가겠는데?”

SBS 월화드라마 <우리는 오늘부터>에서 오우리와 유예리가 나누는 이 짧은 대화 속에는 이 드라마가 어떤 방식으로 이 황당한 막장 스토리를 풀어나가는가를 보여준다. 즉 작가도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 황당하고 그래서 막장드라마의 그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는 걸 대사를 통해 드러내지만, 그러면서도 그게 결국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라는 것을 말하는 방식이다. 막장드라마를 희화화하지만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이 겪는 일들이 바로 그 막장드라마의 스토리다.

로맨틱 코미디류의 드라마에 흔히 ‘막장드라마를 보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물론 그 장면 자체가 웃음을 주기 때문이지만, 이 장면에는 은밀히 그 드라마가 극중 막장드라마와는 다르다는 걸 드러내는 면이 있다. <우리는 오늘부터>는 그 전략을 쓰면서 시청자들에게 은밀히 이렇게 속삭인다. 이 이야기는 막장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우리도 당신도 다 알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대놓고 막장 스토리의 아슬아슬함을 즐기라. 그러다보면 자극적인 재미를 시종일관 제공하는 막장 저 편에서 어떤 의미 또한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니.

먼저 오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료사고로 인공수정을 받고 임신까지 하게 된다는 그 설정 자체가 개연성이 없다. 그런데 더 믿기 힘든 건 이런 ‘사고’에 불과한 임신을 두고 오우리가 임신중단과 출산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국은 낳기로 결심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럴 듯한 이유가 제시된다. 그건 오우리 역시 오은란(홍은희)이 홀로 낳기로 결심해 낳은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돌이 꿈이었지만 아이를 갖게 되어 꿈을 포기했던 오은란은 답답한 마음에 아이를 낳은 걸 후회한다는 말을 엄마 서귀녀(연운경)에게 했고 어린 오우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내내 자신이 ‘엄마의 짐’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아이를 낳아 인생을 망칠 일 있냐는 오은란의 이야기에 오우리는 그래서 정색하며 말한다. “엄마는 엄마는 인생 망쳤어? 안 낳으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왜 내 인생에 혹 달겠어? 평생 후회할 짓 절대 안 해.” 짐짓 그럴 듯해 보이는 이유다. 엄마가 자신을 혹이라 생각하는 걸 견딜 수 없는 오우리는 그래서 자신의 뱃속의 아이를 혹이라 생각하기 싫다는 것.

하지만 이건 비교 자체가 될 수 없는 일이다. 오은란이 최성일(김수로) 사이에서 가진 딸 오우리와, 의료사고로 어쩌다 덜컥 들어선 임신을 어떻게 동격을 볼 수 있을까. 그래서 이렇게 심각하게 오우리가 고민하는 모습은 이런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결코 몰입할 수가 없다. 하지만 드라마는 유예리가 오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껏 막장드라마 소재로 상상한 전개대로 흘러간다. 오우리의 뱃속 아기가 항암치료 전에 얼려둔 라파엘(성훈)의 마지막 정자에 의해 탄생했다는 걸 알게 된 라파엘의 아버지 이사장(주진모)이 아기를 낳아주는 대가로 20억을 제안한 것.

일종의 ‘대리모’ 제안이 된 상황 속에서 오우리는 20억이라는 말에 집안 형편을 떠올린다. 아이돌에 여전히 한이 된 엄마가 한 5천만 원만 있으면 다시 꿈을 펼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떠올리고, 하지만 그래서 사기를 당해 사채 빚에 쪼들리게 된 집안 형편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제안을 하는 이사장에게 오은란은 의외의 답변을 내놓는다. “20억 아니라 200억이라도 안돼요. 왜냐구요? 우리는 내 딸이니까요. 세상에 돈이면 다 되는 것 같죠? 돈으로 안되는 것도 있어요. 내 딸은 안돼요. 내 목숨을 내놔도 내 딸은 안 된다고요.”

엄마가 내놓은 의외의 말에 오우리는 감복한다. 그래서 오히려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다. 황당하게도 “병원 가서 병균 옮은 거랑 뭐가 다르냐”는 엄마의 지극히 당연한 말에 오우리는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럼 나는? 나도 사고야? 나도 병균이야? 엄마 나 왜 낳았어? 나 낳은 거 후회해?” 적당한 감동과 진지함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맥락이 맞지 않는 말들이다. 이렇게 오우리가 말하고 선택하는 건 다만 드라마의 보다 자극적인 전개를 위해서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고 그래서 그를 늘 옆에서 바라보고 도와주며 사랑해온 이강재(신동욱)와 어쩌다 아이 아빠가 된 라파엘 사이에서 벌어질 자극적인 삼각 멜로가 그것이다.

의료사고에 생명 운운하는 이 드라마를 재밌게 보기 위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뇌를 잠시 비워두고 그저 자극적인 흐름과 그 때 그 때 펼쳐지는 막장의 황당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코미디에 몸을 맡겨야 한다. 그런데 그게 과연 될까? 제작진도 알고 있다. 이 이야기가 얼마나 막장인지.

“야 야 낳아서 주고 20억 받아서 팔자 고쳐서 살면 되지. 하지만 나중에 모성애 때문에 비극이 시작되는 거지. 사실은 내가 니 엄마다 하고..” 유예리가 제멋대로 그 상황을 막장드라마 전개로 오인해 이야기하자 툭 던지는 오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 올드해...” 시청자들은 과연 작가 스스로도 알고 있는 올드하고 막장인 이 드라마에 공감할 수 있을까. 쉽진 않을 게다. 다만 작가 스스로 막장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는 점 정도가 유일한 가능성일 수 있지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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