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대중성이 떨어져도 열렬한 지지 받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 주말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가진 훌륭하고 특별한 점은 너무나 많다. 우선 낯선 재미가 있다. 이민기, 김지원, 손석구, 천호진 등 배우들의 찬란한 연기부터가 다른 작품에서는 본 적 없는 색다른 모습들이라 보는 즐거움이 있다. 초반 서사를 포기하고 문턱을 높인 세계관의 구축과 캐릭터 빌드업도 신선했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굵직한 사건들이 빠른 속도로 전개되기보다는 지하철과 마을버스, 둘러앉은 식사자리와 술자리로 대변되는 일상을 반영해 만들어낸 세계관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스스로 규정한 한계와 두려움을 바라보고 넘어서며 비로소 성장한다.

서울시민과 경기도민의 계급을 나누는 설정은 비정규직, 동호회, 가부장적인 가족, 미혼 등과 함께 소외, 변방, 열등감 등 소위 말하는 ‘해방’의 목적어가 된다. 그리고 마치 주성치의 영화를 보는 듯한 4회 구씨의 멀리뛰기나 10회 집에서 바로 나온 슬리퍼 차림으로 영접한 롤스로이스 앞에서 분출되는 염창희(이민기)의 해방감 등 현실을 반영한 세계관과 대비되는 이질적인 판타지를 통해 일종의 해방을 표현한다.

굉장히 밀도 높은 취재와 조사가 묻어나는 대사들이 현실성을 담보하는 한편, 클리셰 또한 무척 잘 활용한다. 확실한 인장이 찍힌 작가주의 드라마지만, 우리나라 드라마 특유의 우연과 인연이 적잖게 작동되고, 많은 것을 대사로 처리하는 작법상의 클리셰를 피하지 않으며 극을 형성하는 세계관 안에 녹여버린다. 특히 구씨 설정은 굉장히 도전적이다. 어둠의 세계에 몸담았던 비밀을 간직한 사내가 한적한 시골 마을에 외지인으로 등장해 영향을 끼친다는 설정은, 박해영 작가의 각본이 아니었으면 첨삭을 피하기 쉽지 않았을, 조폭 코드를 넘어 서부영화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는 말 그대로 클리셰다.

박해영 작가의 대사는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열렬히 추앙하는 본질이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과 감정으로는 담지 못하는 정서와 시선을 담아 이야기하기 위해 고심을 거듭한 문학적 접근이 돋보인다. 흔히 쓰는 말 대신 문어체 표현을 대사에 사용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좇는 방식은 이른바 시네필 출신 감독들의 태도와 닮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해방일지>는 서사가 아니라 정서와 대사(메시지)로 이뤄져 있다. 존재의 본원부터 직장생활의 고단함과 양가적 감정이 드는 가족, 연애의 순간순간까지, 살면서 한번쯤 있었을 법한 기억들, 한번쯤 생각해봤던, 혹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은 이야기를 장면장면 끄집어낸다. 보고 있을 땐 조금 지루한데, 보고 나면 계속해 생각나는 드라마인 이유다.

그렇다면 호평과 찬사, 열렬한 추앙에서 잠시 떨어져, <나의 해방일지>의 대중적 성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제 4회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극 자체에 부유하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예민하고 사려 깊은 시선이 시대정신을 담은 사회적 의미로 확장된다거나 하나의 이야기로 잘 직조되는지는 의문이다.

이렇게 좁게 해석하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해방일지>는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장면장면 깃든 깊은 사유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나, 멀리서 크게 보자면 극의 전개는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연애를 하거나 연애를 하는 과정까지의 곡절과 어려움을 겪는 사유를 다루고 있다. 4회까지와 5회부터의 결정적인 차이 또한 극중 인물 사이의 로맨스라인이 본격 가동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이전의 어둡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어렵던 드라마가 한층 밝아지고, 웃음도 늘어난다. 사랑하는 다양한 관계와 감정을 무척 와 닿게 맛볼 수 있다.

1톤 용달을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 색다른 풍경을 배경 삼아 가족, 동료, 친구 등 주변의 소중함을 확인해간다. 로맨스는 해방으로 가는 출발선이다. 지금까지는 스스로든, 사회적으로든 결핍을 가진 인물들이 짝을 이루고, 사랑을 하면서 무언가를 극복하고 성장한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사랑한다거나 사귀자거나 좋아한다는 말로는 담을 수 없는 이 성장을 추앙이란 새로운 표현으로 펼쳐낸다.

같은 이유로 일각에선 <나의 해방일지>가 위로와 공감을 담은 드라마라곤 하지만 절대 친절한 드라마는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정서적 감도와 주파수를 무척 구체적으로 설정해놓고 추앙이란 단어를 반복 사용하는 것처럼 문턱을 만든다. 결국 건조하게 뜯어보면 연애를 하는 이야기인데, 이 드라마는 생각을 잊고 빠져들게 만드는 몰입이 아니라 계속해서 대사를 곱씹고 그 말에 대해, 나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든다. 게다가 세상을 마주하는 시각을 굉장히 직설적으로 대사를 통해 드러내기 때문에 코드가 안 맞거나 감응이 안 된다면 쉽지 않다. 지겨운 인간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해방클럽’처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타협은 없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드라마는 능력 있는 제작자가 주도권을 가진 K-드라마의 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초반 시청률이 심각해지자 여러 유명 유튜브 리뷰어들이 비슷한 시기에 4화까지 내용을 꽤나 심도 있게 압축하고 드라마를 추앙해야 하는 이유를 담은 소개 콘텐츠를 선보였다. 이는 시청률 그래프에 즉각적인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자면 16부작 토일 드라마에서 초반 4회는 사실 압축했어야 더욱 유리했다는 점을 반증한 셈이다.

줄로 잡히는 플롯도 없고, 경기도민을 열등감의 상징으로 표현하는 세계관은 다소 논쟁적이며, 대사에 담긴 시선과 사유는 무척 직접적이다. 그럼에도 프라임타임에 편성되고 사전제작을 통해 작가가 구축 세계관과 메시지를 소신 있게 펼쳐낸다. <나의 해방일지>는 그런 점에서 K-드라마가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높아진 스타 작가 파워, 스튜디오의 위상을 보여준 일종의 해방이다. 이 드라마에 보내는 찬사는 결국 박해영 작가에 대 지지의 표현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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