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에서 느껴지는 느림의 미학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격하게 달리는 드라마는 아니다. 마치 경기도 시골의 어느 비포장길, 한참을 기다려야 오는 마을버스 같다. 드라마는 초장부터 그 느린 속도에 동참할 것을 시청자에게 요구한다.

그런 면에서 박해영 작가의 <나의 해방일지>는 거만한 부분이 있다. 똑같이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다루지만, 일단 감정의 훅을 훅훅 치고 들어오며 함께 춤추자고 손을 내미는 노희경 작가의 tvN <우리들의 블루스>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이 느린 속도에 동참할 수 있는 시청자는 함께 가요. 라고 툭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을지 말지의 선택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그 손을 잡아보면 어느 순간 이 경기도 삼남매 염창희(이민기), 염기정(이엘), 염미정(김지원)의 삶과 사랑의 이야기를 ‘추앙’할 수 있다. 그 안에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기쁨과 비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만나면, 이야기의 속도와 상관없이 숨을 쉬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실 <나의 해방일지>는 중반부를 넘어선 지금까지도 꾸준히 그 특유의 속도를 유지한다. 드라마는 이 삼남매가 오가는 서울과 산포시의 일상을 계속해서 오간다. 삼남매는 서울에서 각자의 일상을 살고, 산포시에 모여 평생 일만 하며 살아온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또 밥을 먹는다.

염창희의 말처럼 산포시는 정말 재미없는 동네다. 젊은 사람이 들어오지도 않고, 큰 사건도 없다. 드라마 또한 이 재미없는 일상의 흐름을 일부러 흔들며,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다. 다만 일상의 흐름에서 가끔씩 우리가 일탈하는 부분들을 흥미롭게 잡아낸다.

왜 그런 때 있지 않은가? 사는 게 너무 같잖아서, 답답해서, 억울해서 푸념처럼 농담처럼 혹은 진지한데 상대는 너무 어이없는 그런 말들. 그런데 듣고 나면 뭔가 코끝을 찡하게 하는 말들. <나의 해방일지>는 삼남매의 대화와 독백을 통해 그런 순간을 드라마의 대사로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

“하루 24시간 중에 괜찮은 시간은 한두 시간 되나? 그래도 소몰이 하듯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왜 살아야 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은 단정하게 가보자. 그렇게 하루하루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염미정의 대사처럼 <나의 해방일지>는 일상의 흐름을 따라가며 괜찮은 시간과 어려운 시간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안에 삼남매의 사랑과 고민, 어려움 등이 모두 담겨 있다. 창희는 사람 좋고 종종 잘난 척도 하지만 경기도에 사는 자기가 최고의 남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기정은 그 때문에 사랑을 원해도 쉽지 않다. 아버지를 빼닮아 묵묵한 미정은 역시 아버지를 빼닮아 옛 남자에게 돈을 뜯기고도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괴로워한다. <나의 해방일지>는 이들의 이야기를 스치듯 시청자에게 툭툭 던진다.

그 때문에 모든 사건의 각이 딱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 시청자는 어느 정도는 이 사건의 진행을 유추하면서, 마치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듯 관심 있게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이 어쩌면 이 드라마를 추앙하게 만드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삼남매의 이야기를 알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레 이들을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염창희를 비롯한 남매들은 그들이 사는 신포시를 떠나고 싶어 하거나 별 것 아닌 동네로 생각한다. 하지만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당미역들과 그 주변의 시골길을 함께 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의 해방일지>의 서울 외곽은 해방의 힘을 발휘한다. 치이는 삶에서 벗어나 그 조용한 길을 걷다보면, 투닥투닥 말싸움하거나 아예 입을 다물고 있어도 의지가 되는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것 같은 기분. 이 잔잔하고 느린 드라마가 어느새 그런 위로를 해준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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