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수재인가’ 허준호와 황인엽 사이, 서현진에겐 무엇이 진짜 신뢰인가

[엔터미디어=정덕현] “사람들한테 욕먹고 뒷담화 들어도 다 개무시하고 절대 약한 모습 안 보이려 해왔어. 무슨 일이 있어도 멀쩡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눈물이라곤 없는 척, 괜찮은 척, 이를 악물고 참고 버티고 그게 늘 먹혔는데 걔한텐 안 먹힐 것 같아. 걘 날 너무 알아버렸고 다 알아버릴 것 같아. 그게 말도 못하게 쪽팔려. 눈물 나게 쪽팔려.”

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에서 오수재(서현진)는 절친인 채준희(차청화)에게 공찬(황인엽)에게 대해 그렇게 말한다. 독하디 독하게 살아온 오수재다. 그래서 속내를 절대 밖으로 내보이지 않고 마녀처럼 버텨왔던 그가 유일하게 공찬에게 흔들린다. 그건 결코 오수재가 그런 인물이 아니라는 것과, 그래서 어떤 엄청난 일들을 겪었을 거라는 걸 공찬이 알고 있고 그래서 끝까지 오수재의 저 깊은 곳에 숨겨뒀던 진면목을 그가 들여다보고 있어서다. 공찬은 그를 신뢰한다.

그가 오수재를 신뢰하는 이유는 과거 누명을 쓰고 있을 때 모두가 비난해도 유일하게 그를 믿어줬던 이가 바로 오수재이기 때문이다. 신출내기 변호사 시절의 오수재는 결국 당시 공찬의 무고함을 법정에서 풀어주지 못했지만 그의 손을 잡아주며 이렇게 다짐한 바 있다. “힘을 기르고 내용을 갖춰야 해. 너도 나도. 주변에서 헤매지 않으려면.” 즉 공찬의 신뢰는 사실 오수재가 그에게 보여줬던 신뢰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오수재는 끔찍한 일들을 겪는다. TK로펌에서 고졸 출신에 여자라는 이유로 갖가지 차별을 받았고, 최태국 회장(허준호)의 아들 최주완(지승현)의 아이를 갖게 되자 외국으로 보내져 아이가 유산되는 일을 겪고는 자살 시도까지 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돌아와 업무에 복귀하라는 최태국 회장이 내민 손을 오수재는 억지로 잡는다. TK로펌을 다 먹어버리고 그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이 그를 바꾼다. 그는 공찬에게 보였던 신뢰와는 다른, 이익과 욕망을 위해 서로의 약점을 공유하는 거래로서의 신뢰를 최태국 회장에게 말한다.

“아들이 장난치고 버린 여자. 그 아들의 아버지가 여자에게 한 짓. 치밀어 오르지만 돌아왔어요. 저. 제 치부는 회장님의 치부이기도 합니다. 회장님과 전 서로의 치부를 하나씩 물고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오수재는 신뢰가 약점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안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신뢰란 자신의 약점을 보여도 그걸 빌미로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말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상대방의 약점을 쥐어야 한다.

하지만 최태국 회장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오수재가 자신이 내민 손을 잡은 것이 그저 성공하고 출세하기 위함 정도가 아니라 TK로펌을 다 먹으려는 심산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노와 복수심을 가진 오수재가 뭐든 다 하려는 그 욕망을 오히려 이용해 위험할 수 있는 소송들을 그에게 맡겼고, 나아가 비자금 계좌에 오수재 이름을 이용했다. 재벌회장들이 회삿돈 빼돌리거나 막 쓸 때 보험처럼 이용해 먹는 수법이고, 오수재가 그 재벌회장들을 변호할 때 써먹었던 수법을 최태국 회장이 그에게도 써먹고 있었던 것. 최태국 회장은 오수재에게 말한다. “호랑이새끼를 살랑대는 개새끼로 길들이는” 걸 자신이 해온 거라고.

순간 최태국 회장과 오수재 사이의 신뢰관계라는 건 허상임이 드러난다. 사실은 그저 서로의 약점을 쥐고 서로 이용해먹으려 할 뿐이라는 것. 이 정글에서는 신뢰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더 큰 약점을 누가 쥐고 있느냐 이고, 그걸 쥐고 있는 이가 상대를 움직일 뿐이라는 것. 오수재는 자신의 이름을 마구 쓴 최태국 회장의 약점을 쥐고 이름값으로 700억을 요구한다.

<왜 오수재인가>의 서사 구조는 오수재와 최태국의 대결구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공찬과 최태국의 대결구도다. 공찬이 보여주는 진정한 신뢰 같은 관계와 최태국과의 신뢰처럼 이야기되지만 사실은 치고받는 거래관계의 대결. 오수재는 그 중간에 서 있다. 최태국과의 대결에서는 그래서 독한 발톱을 드러내지만, 그것이 그의 진짜가 아님을 알아보는 공찬 앞에서는 흔들린다.

<왜 오수재인가>는 그래서 독하게 싸워야 겨우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에 대한 위로가 담겨 있다. 싸움닭처럼 싸워 무언가를 쟁취해나가지만 그럴수록 점점 잃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주고 바라봐주는 공찬의 시선에 담긴 위로가 그것이다. 최태국과는 그 치부를 공유하며 거래를 했던 오수재는 그래서 공찬이 자신의 그 치부까지 알아봐 주는 게 눈물 나게 쪽팔린다고 한다. 여기서 방점은 ‘쪽팔린다’가 아닌 ‘눈물 나게’에 찍힌다. 창피하지만 누군가 들여다봐주고 공감해주는 그 시선이 주는 위로 때문에.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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