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수재인가’, 우리의 정체에 대해 묻는 드라마

[엔터미디어=정덕현] “빼어날 수 맑을 재. 근데 그 이름을 함부로 쓴 거야. 빼돌린 돈을 세탁하는 계좌에 그 이름을 막 쓴 거야.” 오수재(서현진)는 TK로펌 최태국(허준호) 회장이 바하마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그 돈 세탁에 사용된 해외계좌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마구 사용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 사실을 밝히고 저들과 싸우는 건 무모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최태국 회장에게 이 일을 묻어주는 대가로 700억을 요구한다. 그걸 최태국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름값이 700억이냐고.

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가 드디어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놨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 누군가의 ‘이름값’에 대한 것이 아닐까. 아버지가 ‘빼어날 수에 맑을 재’라고 이름을 지어준 건 그렇게 빼어나고 맑게 자라라는 염원이 있어서였을 게다. 하지만 최태국 회장 같은 이들은 그의 이름을 함부로 돈 세탁에 이용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오수재는 자기 이름이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기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공찬(황인엽)은 그게 남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김동구라는 이름을 쓸 때 의붓동생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썼고 진범이 잡혀 풀려났지만 그럼에도 그의 이름은 이미 더럽혀져 있었다. 누명을 벗고 출소하던 날 의붓엄마는 그의 뺨을 때렸고, 그가 김동구라는 걸 알아보는 학교 친구들은 그를 재수 없어 했다. 눈빛도 이상하다며. 오수재가 더럽혀진 자신의 이름에 분노하는 것처럼, 공찬은 자신의 진짜 이름 김동구를 찾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는 중이다. 당시 진범이라 자수한 이가 진범이 아니라며 그 때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려한다. 그것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길이라 여긴다.

오수재는 자신의 이름이 돈세탁에 쓰였다는 사실을 공찬이 찾아내 준 것이 다행이면서도 마음이 영 좋지 않다. 뭔가 들킨 거 같고 쪽팔린 것 같다. 그래서 공찬을 피한다.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드러낼 때 공찬은 말한다. “나도 그런 거 있어요. 차라리 들켰으면 싶기도 한데 또 몰랐으면 싶기도 하고 교수님만 그런 거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또 퉁쳐요. 우리. 안 좋은 일들만 몰아닥치는 것 같은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조금만 기다리다 둘러보면 좋은 일들이 옆에 와 있어요. 일도 사람도.” 그건 오수재에게 하는 말이면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오수재는 최태국 회장이 부탁한 아들 최주완(지승현)의 이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아내를 임승연(김윤서)을 만난다. 양육권과 친권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말을 꺼낸다. 딸 재희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 그러면서 재희 때문에 자신의 아이를 잃었다고 말한다. “난 재희 때문에 내 아이를 잃었어요. 튼튼이. 뱃속에서 튼튼하게 자라라고 태명을 그렇게 지었는데 어느 날 뱃속에 있는 튼튼이가 심장이 안 뛴다고 하더라고요. 재희가 있다는 거 알고 내가 매일 같이 울고 토하고 잠도 못자고 그렇게 두 달을 보냈더니.”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임승연에게 최태국 회장이 재희를 자신이 낳은 딸로 세상에 알리겠다고 했다는 거였다. 너도 그게 좋지 않겠냐며. 그 이야기에 오수재는 잊고 있던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며 절망한다. 최태국 회장에 속아 미국까지 보내져 사산된 아이. 하지만 그 아이에게도 ‘하늘이’라는 태명이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그 예쁜 이름을 지우고 살았다고. 그래야 살 것 같아서. “아무한테도 말 안하고 아무도 모르길 바라고...”

<왜 오수재인가>라는 제목이 붙여진 건 이 드라마가 결국 이름으로 대변되는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게다. 누군가는 함부로 이름을 이용해먹고, 누군가는 누명 때문에 진짜 이름을 숨긴 채 살아간다. 또 누군가는 대외적으로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타인의 딸을 친딸인 양 속이며 살아가고, 또 누군가는 너무 아픈 상처라 살아가기 위해 죽은 아이의 이름을 지우며 살아간다. 또 누군가는 죽은 아이를 잊지 못해 그 이름 언저리 한쪽을 쥐고 원망의 대상으로서 누군가의 이름을 증오하며 살아가고.

오수재는 자신의 이름값으로 복수하듯 700억을 요구하고, 그래서 그걸 받아내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건 700억이 별거 아니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값의 무게와 가치가 그것보다 더 크게 느껴져서다. 그래서 이 오수재가 갖고 있는 ‘이름값’에 대한 서사는 우리에게도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월급이나 연봉처럼 이름은 이 자본화된 세상에서 흔히 가격으로 그 가치가 매겨지곤 한다. 하지만 그건 가당한 일일까. 당신의 이름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가. 아니 어떤 진짜 가치가 있는 이름값을 하고 있는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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