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투쟁과 민생 사이 ‘붉은 단심’이 말하려한 것은

[엔터미디어=정덕현] “경은 전하께서 성군이 되리라 믿으십니까?” KBS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에서 똥금(윤서아)의 무덤으로 좌의정 박계원(장혁)을 부른 내궁 유정(강한나)은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박계원은 이렇게 말한다. “견제를 견디지 못하는 군왕은 폭군의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즉 그가 생각하는 성군이란 신하들이 하는 말과 견제를 받아들이는 왕을 말한다.

사실이다.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된 군왕이 그 누군가의 견제도 받지 않고 그 권력을 휘두르면 피바람이 불기 마련이다. 폭정은 결국 민생을 도탄에 빠지게 만드는 원인이다. 반정으로 왕을 제 손으로 세운 박계원은 그것이 폭군을 밀어내고 성군을 세우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그런 행보를 보인다.

유정은 박계원에게 자신이 전하를 성군으로 만들겠다고 말한다. “사화도 옥사도 없이”. 권력을 틀어쥐기 위해 왕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파벌을 나눠 대립하고 싸우게 하고 그를 통한 숙청으로 자신의 왕권을 공고히 하는 것이었다. 유정은 왕 이태(이준)가 박계원과 공신들의 힘을 빼기 위해서 독을 먹고 죽어가는 것처럼 자신을 꾸미고 요승의 세치 혀로 대비 최가연(박지연)을 부추겨 폭주하게 만든다.

그가 꾸민 일로 실제로 최가연은 뒷방으로 밀려나고 대비가 벌인 핏빛 사화를 문책하는 신하들에게 오히려 보필하지 못한 죄를 씌워 공신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간다. 이태는 힘이 없어 당하기만 했던 이 권력 투쟁에서 이제 승기를 잡는다. 왕권을 공고히 하는 건 자신을 위해서도 또 훗날 대비가 될 유정과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 역시 궁지에 몰린 공신들이 스스로 살기위해 최가연을 제거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유정은 이태의 이런 술수까지 마다치 않는 권력투쟁으로 똥금 같은 아무런 죄 없는 민초들이 죽어나간다는 걸 알고 있다. 결국 이태도 박계원도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지만, 그렇게 누군가 쥐게 되는 권력의 목적은 결국 민초들을 향해야 하기 마련이다. 권력을 쥐기 전까지는 생존이지만, 막상 쥐고 나면 그 보상이라도 되는 듯 폭주하는 정치는 폭군을 만들 뿐이다.

<붉은 단심>은 이태와 유정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로 문을 열었지만, 그 끝에 이르러서는 권력투쟁과 민생 사이에 놓인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버지가 힘없이 휘둘렸고 그래서 어머니가 스스로 자진하는 선택을 했던 이태나, 이러한 권력투쟁에 휘말려 멸문을 당하고 홀로 살아남은 유정은 모두 이 권력투쟁이라는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감정들을 갖고 있다. 저들에게 복수하고픈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래서 이태는 끝까지 박계원과 공신들을 척결하려 하지만, 유정은 생각이 다르다. 자신의 가문이 멸문된 것이 박계원 때문만이 아니라 그 희생을 방조했던 선왕 때문이기도 하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어서다. 유정은 자신의 비극을 그래서 누구 한 사람 때문이라기보다는 권력투쟁이 만들어내는 무고한 민초들의 희생으로 바라보고 있다.

<붉은 단심>은 실제 역사와는 상관없는 허구로 꾸며진 드라마다. 그런데 사극이 그 시공간을 가져와 어떤 이야기를 허구로 그려낼 때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 던지고 싶은 말이 있기 마련이다. <붉은 단심>이 그래서 하려 했던 이야기는 뭘까.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이 치열하게 싸우는 권력투쟁의 정치현실에서 그렇게 쥐어진 권력은 누구를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사적인 보복정치나 권력만을 쥐기 위한 권력투쟁은 결국 부메랑처럼 계속 돌아와 피를 부를 것이고 민생은 피폐해질 것이다. 견제를 필요한 일로 받아들이고 민생을 지향점으로 보는 권력만이 비극을 만들지 않고 보다 나은 나라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붉은 단심>이 제목으로 내세운 그 ‘단심’은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민초을 향해야 하는 것이다. 비록 그런 선택이 자신을 붉게 피 흘리게 할지라도.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