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 출연자들이 나영석을 다시 깨웠다는 건(‘뿅뿅 지구오락실’)
변화에 자신을 열어 놓는 것, 이것이 나영석 PD의 저력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알잘딱깔센 아니에요? 알잘딱깔센.” ‘알잘깔딱센’이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들고 그 말에 어리둥절해하는 나영석 PD에게 안유진은 가차 없이 “땡!”을 외친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은 이은지가 박장대소를 터트리고 자막은 여지없이 ‘영석이형 잡은 막내’라고 붙는다. 어이없고 창피한 표정으로 나영석 PD는 왕작가(이우정)를 돌아보고, 왕작가는 “늙어가지고...”라며 변명을 내놓는다. 나영석 PD는 “이렇게 창피한 경우는 내가 피디 하면서 처음이다”라고 말한다.

‘알잘딱깔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 있게’라는 말을 줄인 말. 젊은 세대들이 ‘별다줄(별걸 다 줄이는)’하는 말들이 어렵지만 그래도 아는 척(?) 문제로 내놓은 것도 웃기지만, 그걸 틀리게 적어서 실체가 드러나고 제작진이 출연자들에게 휘둘리는 광경이 재밌다. 이건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 <뿅뿅 지구오락실>이 웃음을 주는 새로운 관전 포인트다.

사실 <뿅뿅 지구오락실>은 그 형식과 구성만 놓고 보면 <신서유기>와 다를 바가 없다. <신서유기>가 드래곤볼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국내 혹은 해외로 나가 갖가지 게임을 하는 것이라면, <뿅뿅 지구오락실>은 지구로 도망간 달나라 토끼 ‘토롱이’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역시 특정 지역으로 떠나 게임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살짝 잠잠해지는 시기, 나영석 사단은 ‘지구를 오락실’ 삼는 스케일 큰 게임예능으로 방콕으로 날아가 그 첫 촬영을 했다.

그래서 여행하고 게임하는 뻔한 이야기가 나올 법 했지만, 하나의 변수가 모든 걸 뒤집어 놓았다. 그건 출연자다. 이은지, 이영지, 미미, 안유진. 지금껏 나영석 사단이 해왔던 남자 출연자들(특히 중년 이상 심지어는 노년)과는 사뭇 다른 젊은 여성 출연자들이 그들이다. 세대가 다른 이들은 나영석 사단이 이미 <신서유기>를 통해 해왔던 똑같은 구성과 형식을 반복해도 전혀 다른 구도와 이야기를 내놨다.

맛있는 현지 음식이나 포상(?)을 내놓고 게임을 제안하고 출연자들이 욕망에 휘둘려 눈이 벌게져 게임에 뛰어들지만, 여지없이 쉽지 않은 그 게임에서 졌을 때 “땡!”을 외치며 욕망을 꺾어버리는 그 구도는 나영석 PD가 KBS <1박2일> 시절부터 줄곧 복불복 게임을 통해 해왔던 것들이다. 게임 예능이 아니라도 나영석 사단이 만드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출연자들에게 어떤 미션을 내놓는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즉 제작진이 주도권을 쥐고 끌고 가고 때론 출연자들을 골탕 먹이는 것이 재미의 주요 포인트였던 것.

하지만 <뿅뿅 지구오락실>의 새로운 출연자들은 이 구도를 완전히 뒤집어 놨다. 첫 만남부터 나영석 PD가 쓰는 언어를 두고 “옛날 사람”이라고 몰아세우고, 어렵다 생각했던 게임을 의외로 선선히 풀어내며,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끝없이 게임을 오히려 요구하기도 한다. 또 방콕에서 ‘낙오’까지 시키지만 MZ세대들답게 너무나 쉽게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를 찾아온다. 결국 나영석 PD를 포함한 제작진이 텐션에 지쳐 도망가는 입장이 되고, 계획이 틀어져 즉석에서 게임을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곤혹스러운 미션을 마주하게 된다.

물론 구도의 변화만큼 이 네 명의 젊은 여성 출연자들이 만들어가는 관계의 진전 또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다. 처음에는 데면데면해 보였지만 저 세상 텐션을 가진 영지와 가장 나이가 많은 은지가 금세 게임을 하며 친해지더니 여기에 미미와 안유진도 별 이물감 없이 스며든다. 그런데 등장부터 ‘괄괄이’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질 정도로 영지와 은지가 프로그램을 이끌어갈 듯싶었지만 의외로 미미와 안유진이 점점 존재감을 키워간다. 특히 이들과는 사뭇 다른 차분한 이미지로 섭외했던 안유진이 갈수록 4차원 매력을 드러내면서 네 명 캐릭터의 균형이 만들어졌다.

그래서일까. 나영석 PD는 이들을 캐스팅한 것에 운을 다 썼다며 “금광 캔 기분”이라고 제작발표회에서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운이 좋아 벌어진 일일까. 늘 해왔던 출연자들과 다시 또 다른 프로그램을 계속 하는 건 우리네 예능계에서 하나의 관행처럼 당연시됐던 일들이다. 심지어 김태호 PD도 MBC를 퇴사해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먹보와 털보>, <서울체크인>을 만들었지만, 그 출연자들은 이미 <무한도전>에서 <놀면 뭐하니?>를 거쳐 익숙한 노홍철, 비, 이효리다.

나영석 PD도 그간 그 흐름에서 크게 다르진 않았다. 이서진과 강호동, 차승원, 유해진 같은 인물들이 이른바 ‘나영석 사단’처럼 불리질 않았던가. 하지만 나영석 PD는 일찍부터 유튜브 숏폼을 실험해왔고, 이를 통해 유튜브 감성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재미와 웃음을 고민해왔던 게 사실이다. 이번 네 명의 출연자들 역시 모두가 SNS를 통해 색다른 매력들을 보여줬던 인물들이라는 점은 이 캐스팅이 그저 우연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이건 운이 아니다. 어떤 새로운 흐름에 얼마나 과감하게 자신을 열어 둘 수 있는가 하는 그 자세가 만들어낸 결과일 뿐. 때론 이런 자세는 의외로 커다란 성취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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