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뻔한 게임 예능? ‘뿅뿅 지구오락실’이 저격하고 있는 것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배불러요.” 나영석 PD가 지금껏 해온 게임 예능에서 가장 자주 달콤한 유혹으로 내세웠던 건 음식이다. KBS <1박2일> 시절에 지방을 가면 한 상 그득 차려놓고 복불복 게임을 할 때마다 음식 하나씩을 빼가며 득의의 웃음을 지었던 나영석 PD를 누구나 기억할 테니 말이다. <1박2일>이 복불복 게임에 활용한 음식은 여타의 게임 예능들이 반복해서 활용한 장치였다. 그런데 그게 먹히지 않는 게임 예능이 등장했다. 음식을 갖다 놓고 게임을 하려하지만 출연자들이 배부르다고 말하는 예능. 바로 tvN <뿅뽕 지구오락실>이다.

예능의 틀은 <신서유기> 그대로이고, 제작진도 그대로지만 이 게임 예능은 다르다. 다른 이유는 딱 하나 출연자들이다. 이은지, 이영지, 미미 그리고 안유진. 늘 중년 남성들을 출연자로 세웠던 나영석 PD가 이제 좀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젊은 여성 출연자들을 세웠는데 이들은 그의 말대로 ‘보물들’이었다. 이들의 특징은 뭐든 진심이라는 점이다.

즉 이들은 게임에도 음식에도 진심이다. 그래서 음식을 차지하기 위해 게임에 적극적으로 임하지만 어느 정도 음식을 먹고 나면 게임에 심드렁해 한다. 반면 음식과 상관없이 게임 자체가 재미있으면 제작진이 힘들어할 정도로 계속 게임을 요구한다. 워낙 게임에 진심이어서인지 의외로 너무 쉽게 게임을 풀어버리고 또 다른 게임을 자꾸 요구하니 제작진들이 이제 오히려 곤혹스러워진다.

<1박2일> 시절부터 나영석 PD가 갈고 닦아온(?) 게임 진행 능력은 최근 <출장 십오야> 같은 프로그램으로까지 이어질 정도로 정평이 나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들 앞에서는 안하던 실수를 연발한다. 젊은 세대의 언어를 애써 쓰려다 실수하고, 게임 진행 중에도 어설픈 실수를 저질러 출연자들의 반발 앞에 고개를 숙인다. “세상에 이렇게 부끄러웠던 적은 처음”이라고 나영석 PD가 게임진행을 하다 말할 때 시청자들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건 게임 예능의 판이 뒤집어지고 그 주도권이 바뀌면서 생겨나는 카타르시스다. 이은지와 영지야 당연히 예능에 찰떡 같이 어울려 <뿅뿅 지구오락실>을 끌고 갈 거라 여겨졌지만, 의외로 레트로 감성이나 옛 음악들을 전주만 듣고도 척척 맞추는 미미와 전혀 예능에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막내 안유진이 Z세대 특유의 능력발휘(?)로 제작진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토록 출연자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던 ‘낙오’ 설정이 스마트폰 활용에 익숙한 안유진에 의해 너무 쉽게 뚫려버리는 상황은 당황하는 제작진의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그래서 <뿅뿅 지구오락실>은 그저 또 하나의 게임 예능처럼 보이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게임 예능의 흔하디흔한 서사를 의도치 않게 저격해버리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10년이 넘게 훌쩍 흘렀지만 <1박2일>과 <런닝맨> 같은 구시대의 게임 예능에 머물러 있는 프로그램들에 대한 저격이다. 아직도 제작진에 의해 끌려 다니는 게임 예능을 하고 있냐고 <뿅뿅 지구오락실>은 묻고 있는 듯하다.

더 흥미로운 상황은 <뿅뿅 지구오락실>의 출연자들이 저마다 SNS를 하고 있는 인플루언서들이고 그래서 이 방송만큼 자기 방송에도 진심을 드러낼 때다. 영지가 자신의 SNS에 올리려고 출연자들과 함께 뮤직비디오 커버 영상을 찍는데 빠져 있자, 제작진이 그게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장면이 그렇다. 즉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나영석 사단이 만들어 놓은 그 게임예능의 틀 안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걸 하는 데 더 진심이다.

이건 마치 최근의 MZ세대들이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결코 그 시스템대로 끌려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쩔 수 없이 그 시스템 안에서는 그걸 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으면 싫다 말하며,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라면 오히려 시스템을 압도해버리는 그런 모습들이 그것이다. 그래서 <뿅뿅 지구오락실>을 보다보면 이제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단순하지만 꽤 오래도록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다소 뻔해진 게임 예능의 시대가 저만치 과거의 유물로 멀어지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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