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없던 새로운 예능의 탄생, ‘지구오락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캐릭터 플레이를 기반으로 하는 리얼버라이어티에서 출연자가 사랑스러워 보인다면 더 이상의 평가는 사족이다. 심지어 설정부터 디테일까지 ‘클리셰’의 점철이라 할 수 있는 게임쇼로 매력을 보여줬다면 극찬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게임예능의 명백한 한계는 온갖 유용하고 흥미로우며 편리한 대체제가 있는 오늘날 한 시간 넘게 무용한 타인의 게임을 지켜봐야 한다는 데 있다. 게다가 일주일 후에도 게임은 반복된다. tvN <뿅뿅 지구오락실>은 그럼에도 게임예능의 틀을 그대로 가져와 등장하는 인물들을 사랑스럽게 보여주고, 다음 주가 기다려지는 새로운 게임쇼를 만들어냈다.

<지구오락실>의 비교적 낮은 시청률, <신서유기>의 스핀오프를 기존 예능에 길들여지지 않은 20대 초중반 여성 출연자로 구성하며 나타나는 생경한 바이브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유연함을 갖고 지켜보면 <신서유기>의 재미나 기존 여성예능의 지향과는 완연히 다른, 우리가 근 20여 년 간 봐온 MC를 중심으로 하는 <무한도전>식 리얼버라이어티 예능 문법을 벗어난 ‘뉴타입’의 예능이란 점을 알아볼 수 있다.

이는 기록으로도 나타난다. 원형인 <신서유기> 시리즈를 비롯한 게임 기반 예능은 예외 없이 관심, 시청률, 화제성 면에서 늘 뒷심 부족 현상을 겪지만 <지구오락실>은 태국에서 찍은 본방분이 마무리되고 한국에 돌아와 찍은 회차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점진적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다.

<지구오락실>의 재미 원천이며, 늘 봤던 뻔한 포맷이 새롭게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세대 차에 있다. 2000년대 이후 예능계를 장악한 1970년대생 MC와 예능 선수들이 갈고 닦아온 익숙하고도 익숙한 거푸집 같은 예능 포맷 위에 이른바 캐스팅만 Z세대로 바꾸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본다. 메인MC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펼쳐진 리얼버라이어티의 관계망 형성보다 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그 놀이문화를 관찰한다. 제작진 사이드에서도 이우정 작가, 나영석 PD의 아랫세대인 박현용 PD를 부각해 세대 차라는 관점에 주목도를 높인다.

그 결과 출연진들을 난감하게 만들던 나영석 PD가 이른바 당하는 샌드백 역할로 전환되고, 출연진은 제작진이 설정한 울타리를 가볍게 벗어난다. 1회 오프닝에서 소개한 세계관과 그로 인해 ‘토롱이’와의 추격전이란 제작진이 세팅해놓은 스토리라인은 사실상 초반부터 유명무실하다. 현지에서 특정 장소를 찾아가는 깜짝 미션은 내 손 안의 세계가 전화기를 대체한 시대에 자랐고, 글로벌 활동이 기본 옵션인 세대에게 작은 유희일 뿐이다. 심지어 방송분량을 담당했어야 할 추격전조차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촬영장에서 계속된 제작진의 비상 회의가 이해가 간다.

그런데 제작진의 패닉과는 별개로 아이돌 댄스로 상징되는, 기획의도, 준비된 게임과는 별 상관없는 케이팝 전성시대에 유년기를 보낸 또래집단의 흥과 놀이문화가 화학작용을 일으킨 에너지가 폭발한다. <윤식당>,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 <신서유기> 등등 나영석 브랜드는 늘 그들이 설정한 세계와 울타리 안에서 출연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전지적 시점에서 관찰하며 예능 동화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번 출연자들은 포괄적 의미로 자발적이다. 제작진이 출연진에게 “저희 쉴게요.”라고 말하는 전복적인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고, 이은지는 입버릇처럼 “우리 버리지 마, 우리 같이 해.”라고 매달린다. 이런 모습은 예능 선수들에게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림으로, 기존 관점과 작법에선 비생산적,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자발적 에너지와 MT버전 텐션이 익숙하고 뻔한 예능의 답습을 피해가는 우회로였다. 스스로 즐길 줄 알기에, 출연진은 제작진이 만든 세계관을 이루는 울타리와 가이드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뿐더러 캐릭터 설정이나 관계망 형성의 필요와 방법론 또한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구오락실>은 진행자인 메인MC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 예능과 달리 형님, 언니 문화와 놀리고 비난하는 문화가 없다. 샌드백 역할과 공격수 역할을 따로 나누지도 않는다. 그 덕분에 예능이 낯선 안유진과 미미의 매력이 손쉽게 발견될 수 있었고, 이영지는 방송 프로덕션에서도 그 어떤 억제기 없이 가진 끼와 재능을 십분 발휘했다. 정통 코미디언 출신인 이은지의 활약과 재능은 놀랍다. 예능에 만연한 타인을 대상으로 깎아내리는 코미디를 하지 않고 일상의 감각과 경험이 밑바탕이 된 재능을 말 그대로 폭발시킨다.

나영석 사단의 새로운 브랜드 <지구오락실>은 <꽃보다 청춘>시리즈 이후 기존 예능선수 없이, 나영석 월드에 처음 입성한 출연진들만으로 만든 리얼버라이어티다. 실질적으로 <신서유기>의 명백한 스핀오프인 동시에 좋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나영석 사단 콘텐츠의 맥을 담고 있다. 실험적인 캐스팅을 한 이유가 여기까지 내다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지구상에서 음악퀴즈를 가장 잘 만들어내는 4명의 조합을 만들어냈다. 또 하나의 성공 사례를 추가한 나영석 사단의 대중적 감각은 신탁도 가능할 도사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지구오락실>이 가진 또 하나의 킬링 포인트는 내세운 기획의도나 <신서유기> 시리즈로는 도저히 연결점을 찾을 수 없는 케이팝 콘텐츠라는 데 있다. 현직 아이돌과 스타가 주구장창 아이돌 댄스를 듣고 추고 연구하고 시대를 잇는 이야기를 하고 일종의 프로모션까지 겸한다. 재밌는 건 그 대부분이 제작진이 의도한 울타리 밖에서 이뤄진다는 데 있다.

방송 프로덕션 차원에서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웹예능과 방송의 플랫폼 간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을 해온 나영석 사단은 Z세대와 함께 본격 방송형 예능콘텐츠를 들고서 새로운 예능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서진, 차승원, 유해진, 윤여정 배우 등에 이어 이번엔 Z세대 새로운 예능 주자를 대중에게 소개하고 동시에 놀라운 팀을 만들어냈다.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 사람에 대한 접근으로 예능을 풀어가는 것이 나영석 사단 예능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과연 이들의 눈에 보인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보고 기대한 것일까. 롱런의 비밀이 다시 한 번 궁금해진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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