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커’의 진가 보여준 할머니 미술관편의 감동

[엔터미디어=정덕현] “여기는 코로나19 때문에 자녀들을 못 오게 하셨어요. 그런데 엄마 마음은 계속 자식들 먹이는 게 최고잖아요? 그래서 할머니들은 그림으로 우리가 밥상을 차리자. 그래서 ‘구첩반상’. 그럼을 그려서 이거를 자녀분들에게 찍어서.. 잘 먹어라. 그걸 보내드렸어요.”

할머니들이 그린 구첩반상이라는 작품 속에는 알록달록 예쁘게도 차려진 음식들이 채워져 있었다. 밥, 고추, 오징어가 들어간 찌개, 생선구이... 할머니들의 자식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그 그림 안에 상다리 부러지게 가득 채워졌다. 그걸 바라보는 백종원을 비롯한 오대환과 안보현, 딘딘은 아마도 가슴이 뜨끈해졌을 게다. 그들이 차려온 그 어떤 밥상들보다 마음의 포만감을 주는 밥상이었으니.

tvN 예능 <백패커>가 찾아간 곳은 경북 예천군에 있는 할머니 미술관. 의뢰인은 그 곳을 운영하고 있는 이성은 관장이었다. 그는 할머니 미술관을 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그렇잖아요. 내가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아 그냥 죽어야지. 이런 소리들을 많이 하시죠. 그 우울증을 좀 풀어드리고 싶어서 매개체가 된 게 미술 치료였어요.” 그런 계기로 시작한 일이지만 할머니들의 그림은 놀랍게도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독일 함부르크에 초대되어 전시회도 참가하고 평창올림픽 때는 그림이 매개가 되어 한 할머니가 성화봉송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들이 이 미술관을 찾는 것이 단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일 때문만이었을까. “우리는 여기 오는 날이 생일날이여. 점심 꼭 얻어먹지요.” 한 할머니의 말처럼 그 분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불러주고, 함께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하고 또 마을 담벼락에 함께 그림을 그려 넣어주며 자기 존재를 알아주고 드러나게 해주는 그 마음이 수요일이면 열일 제쳐두고 그 곳으로 할머니들을 향하게 하지 않았을까. 미술관에서 대접하는 점심 한 끼를 챙겨먹는 일 또한 배의 포만감이 아니라 마음의 허기를 가득 채워주는 그 포만감 때문에 각별했을 게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백패커>의 의뢰에 임하는 백종원이나 오대환, 안보현, 딘딘은 벌써부터 마음의 자세 자체가 달랐다. 의뢰인은 겨우 27명에 불과해 한 두 명은 일찍 퇴근해도 되겠다고 허세를 부렸지만, 막상 찾아간 곳에서 퇴락한 벽에 예쁜 물감으로 색색의 그림을 채워 넣고 계신 할머니들을 보는 이들의 눈길은 고향에 계신 혹은 먼저 떠나간 부모님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오대환은 관장님의 의뢰를 들으며 갑자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아니 아까 ‘구첩반상’ 볼 때부터 울컥울컥했었거든요. 제가 그 감동이 있나 봐요. 그냥 따뜻해요. 저는... 엄마 생각이 좀 나고 다 가족 챙기느라 본인은 잘 못 챙겨 드시는데 저희 엄마도 그랬었고...” 딘딘은 “오늘 잘해야 될 이유가 있네요”라고 했다. 할머니들의 그림은 그렇게 먼저 요리를 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줬다.

놀랍게도 할머니들이 의뢰한 음식은 ‘MZ세대 요리’. 시골에서 늘 먹던(사실은 대충 챙겨먹던) 음식이 아닌 젊은 세대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것. 백종원의 선택은 할머니들이 드시기 편한 함박스테이크와 당근으로 만든 스프, 빵을 파서 파스타를 넣어 만든 빠네 파스타 그리고 멜론을 파서 안에 각종 과일과 아이스크림을 채워 넣은 디저트였다. 요리를 만드는 과정이야 지금껏 <백패커>가 해왔던 것과 무에 다를 게 있으랴. 하지만 의뢰인에 대한 마음이 달라서인지 그 요리를 만드는 과정에도 더 몰입하게 되는 구석이 있었다. 마치 내가 대접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할머니들은 너무나 만족스러워 하셨고, 잘 드셨다. 너무 잘 생겨 외국인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고 했던 안보현이 한 분 한 분 눈을 맞춰가며 할머니를 응대하는 모습도 따뜻했다. 그 중 한 할머니는 집에 계신 남편분이 떠오른다며 남은 음식을 챙겨 서둘러 돌아가시기도 했다. 할머니들이 맛있게 드시고 그렇게 음식을 준비해준 백종원과 출연자들에게 연실 박수를 쳐주고 또 그 와중에도 가족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백패커>의 정경은 더욱 뿌듯해졌다. 마음의 포만감이 그런 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것이 <백패커>가 앞으로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 아닐까 싶은 방송이었다. 물론 매 번 이럴 수는 없고, 때론 스펙터클하게 몇 백 명 분의 음식을 만들어 선보이는 ‘극한 미션’의 재미도 있어야 하겠지만, 때론 양보다 질, 배보다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이번 방송 같은 이야기가 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줄 터였다. 특히 명절을 앞두고 고향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시점에 따뜻한 포만감을 주었던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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